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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건축가들이 말하는 ‘한옥’의 재해석

by 디디s 2025. 4. 7.

오늘은 현대 건축가들이 말하는 ‘한옥’의 재해석에 대해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현대 건축가들이 말하는 ‘한옥’의 재해석
현대 건축가들이 말하는 ‘한옥’의 재해석

 

— 승효상, 조민석, 김인철을 통해 본 전통과 현대의 경계

 

‘절제된 건축’으로 풀어낸 정신: 승효상의 한옥적 사고

승효상은 한국 현대건축계에서 가장 철학적인 건축가로 꼽힌다. 그는 전통 건축을 단순히 ‘형태’로 재현하려 하지 않고, 정신과 태도, 철학을 계승하려는 접근을 택한다. 그의 건축은 한옥의 공간적 사고방식, 특히 여백, 비움, 절제에 주목한다.

대표작 중 하나인 ‘수졸당’(서울 평창동 소재)은 한국적인 공간미학을 현대적인 언어로 재해석한 사례다. 이 건축물은 외형적으로는 한옥과 전혀 닮지 않았지만, 공간을 나누는 방식이나 자연과의 관계 맺음에 있어선 매우 한국적이다. 특히 마당을 중심으로 구성된 공간, 빛과 그림자의 활용, 그리고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재료의 질감은 전통 한옥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되살린다.

승효상은 이를 ‘비움의 미학’이라 부른다. 그는 “한옥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자연과 사람을 품는다”고 말하며, 현대건축도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보다 어떻게 비워내고 여백을 만들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건축은 한옥의 ‘형태’를 따라가지 않지만, 한옥의 ‘정신’을 철저히 현대적 방식으로 구현해낸다는 점에서 진정한 ‘재해석’이라 할 수 있다.

 

실험과 해체, 그리고 상상력: 조민석의 비정형 한옥

조민석은 현대건축에서 다층적인 서사와 예술적 실험으로 잘 알려진 건축가다. 그의 접근은 한옥을 단순히 계승하거나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한옥을 하나의 개념으로 분해하고 재조합하는 방식에 가깝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사이 집’이나, 강원도 평창에 지은 ‘삼일재’ 같은 프로젝트에서는 전통 한옥의 요소를 현대적인 조형 언어로 치환하는 시도가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기와 대신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대청마루의 열린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외피는 극도로 현대적인 재료와 형태로 구성한다. 조민석은 이러한 방식으로 ‘형태의 전통’이 아니라 ‘공간의 경험’을 전통으로 본다.

특히 그는 한옥의 ‘중간 공간’ 개념을 즐겨 활용한다. 마루, 툇마루, 마당처럼 실내도 실외도 아닌 유연한 공간들은 조민석 건축에서 중요한 매개로 작용한다. 이것은 현대 도시의 밀도 높은 삶 속에서 공간의 흐름과 휴식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조민석에게 있어 한옥은 고정된 구조물이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듈이다. 그는 전통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가운데, 전통이 현대에서 어떻게 살아 숨 쉬는지를 건축적으로 제안한다.

 

재료와 구조로 말하는 정체성: 김인철의 모던 한옥

김인철은 ‘한옥의 현대화’를 가장 물리적인 차원에서 풀어낸 건축가 중 하나다. 그는 전통건축의 외형, 구조, 재료를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현대적인 편의성과 기능을 결합해낸다는 점에서 매우 실용적이고 직접적인 재해석을 보여준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남해 바람흔적 뮤지엄’이나 ‘정림건축 사옥’, 그리고 ‘한옥스테이 소설재’ 같은 작품들은 전통 목재 구조, 기와 지붕, 한지 창호 등을 현대적으로 가공하여 사용함으로써 ‘현대 한옥’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김인철은 한옥의 구조적 원리, 특히 목구조의 유연함과 통풍 시스템에 주목한다. 그는 이를 현대 건축기법과 결합해 자연환기와 단열, 그리고 패시브 건축 요소까지 실현하고 있다. 예컨대, 한옥의 처마는 여전히 그의 건축에서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으며, 계절에 따른 햇빛의 각도를 고려해 조절되는 그늘과 빛의 흐름은 건축을 넘어선 환경적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김인철의 작업은 결국 ‘전통을 살아 있는 기술로 복원하는 것’이다. 그는 전통을 고전적인 틀로 보지 않고, 현대 건축 기술과 디자인 언어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하는 유기체로 인식한다.

 


승효상은 정신과 철학으로, 조민석은 형식과 서사로, 김인철은 재료와 구조로 한옥을 재해석하고 있다.
세 건축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지만, 공통적으로 전통을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 사고와 기술 속에서 되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의 보고로 바라본다.

그들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한옥이 단지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공간, 미래를 지향하는 건축적 상상력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결국 한옥의 재해석은 단순한 외형 복원이 아니라, 삶의 방식, 공간의 질서,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묻는 작업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지금도 많은 건축가들과 디자이너들에게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