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모조품의 시대]에 대해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 AI가 만든 고전 화풍 작품과 미술계의 위조 우려
AI는 ‘모사’를 넘어 ‘창작’하는가: 기술이 넘은 예술의 경계
20세기까지 미술 위작은 대부분 수작업에 의존해왔다. 고흐의 붓터치, 렘브란트의 명암 처리, 피카소의 큐비즘을 흉내 내는 것은 고도의 손기술을 요구했으며, 진위 감정을 통과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등장한 딥러닝 기반의 생성형 인공지능은 이 고전적 위조의 한계를 완전히 허물었다.
오늘날의 AI는 단지 화풍을 ‘흉내’내는 수준을 넘어서, 고전 화가의 창작 방식, 색감 구성, 조형 철학까지 학습하여 마치 ‘그가 다시 살아 그림을 그린 것 같은’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일례로, ‘고흐 스타일로 그린 서울의 풍경’이나 ‘렘브란트 풍의 인물 초상화’는 인간이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생성된다. 디지털 캔버스에 구현된 이 작품들은 겉으로 보기엔 고흐의 진품보다 더 고흐답기도 하다.
이러한 기술은 단순한 흥밋거리를 넘어서 예술의 본질적인 개념을 흔들고 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표현인가, 정체성인가, 아니면 창작 주체의 고유한 시선인가? AI가 기존 작품들을 학습하여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만들어낼 때, 우리는 그것을 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니면 단지 정교한 모방일 뿐인가?
여기서 문제는 단순히 ‘기술적 재현’에 그치지 않는다. AI가 만든 이 가짜 같은 진짜들은 이제 예술 시장에서 실제 작품처럼 거래되거나, 진품을 위협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술시장, 진짜를 의심하다: 위조품과 진품 사이의 경계 붕괴
2023년, 유럽의 한 미술 경매장에서 출품된 ‘고흐 스타일 풍경화’가 실제로 AI에 의해 생성된 이미지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며 미술계는 충격에 빠졌다. 이 작품은 고흐의 진품은 아니었지만, 감정가와 전문가들조차 처음에는 디지털 복제품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만큼 기술은 진위를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이는 전통 미술시장의 신뢰 시스템을 뒤흔드는 사건이 되었다.
AI로 생성된 고전 화풍의 작품은 몇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첫째는 진품 감정의 기준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붓의 질감, 캔버스의 재료, 물감의 화학 성분 등으로 위작 여부를 판단했지만, 디지털 이미지로 유통되는 AI 작품은 이러한 기준을 무력화시킨다.
둘째는 상업적 위조의 가능성이다. AI로 생성한 작품에 캔버스를 입히고, 적절한 나이 든 프레임을 씌우면 감쪽같은 ‘빈티지 명화’가 된다. 디지털 프린팅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이러한 위조품은 해외 경매장이나 온라인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손쉽게 유통될 수 있다.
셋째는 의도적 기만이 아닌 경우에도 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예술 실험이나 팬 아트의 일환으로 AI 작품을 공개했지만, 제3자가 이를 인쇄하거나 실물화한 후 진품처럼 유포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지만, 그 활용 방식이 상업적 사기를 야기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가 필요하다.
결국 AI로 인한 예술 위조는 단지 몇 개의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예술 시장 전체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불확실성에 휘말리게 만든다. 이 위기 앞에서 미술계는 새로운 형태의 진위 인증 시스템, 예컨대 AI 감별 알고리즘, 블록체인 기반의 소유권 이력 관리 같은 기술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예술로 받아들일 것인가: 진정성의 가치와 AI 시대의 미학
이제 질문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수용자의 태도와 철학적 기준으로 옮겨간다. AI가 만든 작품이 진품과 구별되지 않고,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더 감동적이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면, 예술의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예술은 인간의 감정, 시대적 맥락, 그리고 존재론적 고뇌를 표현하는 행위다. 단지 ‘결과물’로서의 이미지나 음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누가 어떤 감정으로 창조했는가가 핵심이다. 그렇기에 많은 예술가들은 AI가 아무리 정교한 그림을 그리더라도 그것은 ‘표현’이 아니라 ‘재조합’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AI를 통해 예술에 처음 다가서는 사람도 있다. 고흐를 몰랐던 이가 AI 생성 이미지를 통해 그의 색감과 구도에 감동받는다면, 그것은 예술 감상의 새로운 입구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감동이 '진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은 교육과 진실의 문제로 이어진다.
또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AI 예술은 예술에 대한 대중의 기준과 태도를 바꿔놓을 수 있다. 우리는 진품을 보는 이유가 역사적 가치인지, 창작자의 고뇌인지, 아니면 단지 보기 좋기 때문인지 다시금 돌아봐야 한다. 예술은 감동을 주기 위한 결과물이 아니라, 창작 주체와의 대화이자 그 시대와 사회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AI 예술은 위협이자 기회다. 우리는 그것을 무조건 배척하거나 맹신하기보다, 비판적 거리에서 그 가능성과 한계를 살피고, 예술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모방의 시대, 진정성의 재발견이 필요한 이유
AI는 이제 예술을 복제할 뿐만 아니라 창작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창작이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지, 또 그것이 진짜 예술이라 불릴 수 있는지는 우리가 예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작품이 가득한 시대. 이제 예술은 단순히 시각적 충족을 넘어서, 정체성과 진정성, 창작의 서사를 묻는 철학적 질문에 직면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은 AI가 아닌 인간만이 끝까지 풀 수 있는 문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