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윤리인가 예술인가: 죽은 예술가의 저작권과 허용 범위]에 대해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 유족 동의 없이 생성된 AI 작품에 대한 법적, 도덕적 이슈 탐구
AI, 죽은 예술가를 다시 호출하다
AI 기술의 발전은 단지 이미지나 음악을 '만드는' 수준을 넘어서, 이미 고인이 된 예술가들의 작품 스타일과 창작 철학까지 재현하고 모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마치 피카소, 고흐, 프리다 칼로, 바흐, 베토벤이 다시 살아 돌아와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AI가 학습한膨대한 이미지나 악보 데이터 속에는 이들의 수많은 대표작이 포함돼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피카소풍의 초상화, 프리다 칼로 스타일의 자화상, 베토벤의 미완성 교향곡 10번을 AI가 완성한 프로젝트 등이 이미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종종 “AI가 예술을 창조할 수 있다”는 기술 낙관론에 기반해 찬사를 받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윤리적 질문과 저작권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죽은 예술가의 예술 스타일, 혹은 이름과 유산을 AI라는 도구로 재활용해도 되는가? 생전에 그들이 남긴 작품은 공공재로 볼 수 있는가, 아니면 사후에도 일정한 보호와 존중을 받아야 하는가?
저작권은 죽음 이후에도 유효한가: 법의 빈틈과 회색지대
저작권법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저작자 사망 후 50년 또는 70년까지 해당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보호한다. 이 기간이 지난 작품은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으로 전환되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지만, 문제는 "작품 자체"가 아닌 "예술가의 스타일"이나 "정체성"에 관한 권리는 이러한 법적 보호에서 비껴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AI가 피카소 스타일로 새로운 그림을 생성하더라도, 그 그림 자체가 피카소가 그린 원작을 복제하지 않는 이상, 기존 저작권법으로는 법적 침해를 증명하기 어렵다. 이는 저작권이 '완성된 창작물'을 보호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창작 스타일이나 미학적 정체성은 보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법적 고려 대상은 퍼블리시티권(Right of Publicity)이다. 이는 어떤 인물의 이름, 얼굴, 목소리, 서명 등 상업적 사용과 관련된 권리를 보호하는 개념인데,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사망 이후에도 이 권리가 유족이나 권리 보유자에게 넘어가는 것으로 간주한다. 예컨대, 마릴린 먼로나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미지를 광고에 사용하는 경우, 법적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한다.
하지만 시각 예술가나 작곡가의 화풍, 문체, 작곡 스타일은 이 퍼블리시티권에 포함되지 않으며, 대부분의 경우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결국, 현행 법 체계는 죽은 예술가의 스타일을 '기술적으로 재현하는 행위'를 규제하지 못하며, 이로 인해 수많은 AI 기반 작품들이 법적 회색지대에서 상업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상속인의 권리와 사회의 책임: 윤리적 논쟁의 최전선
법적 권리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윤리적 정당성까지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AI가 죽은 예술가의 이름과 명성을 기반으로 창작물을 만들어내고, 이를 상업적 수익으로 연결시키는 현상은 점점 더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예를 들어, 2022년 한 미술 플랫폼에서는 'AI 프리다 칼로'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 스타일을 학습시킨 모델이 새로운 그림을 생성하는 전시를 열었다. 이에 대해 일부 예술가와 문화 평론가들은 “프리다의 고통과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계가 그녀의 정체성을 모욕하고 있다”며 비판했고, 프리다 칼로 재단 측에서도 명시적 동의 없이 상업적 사용을 했다는 점에서 반발했다.
이처럼 사후 예술가의 스타일을 이용한 AI 프로젝트가 상속인 혹은 유족의 동의 없이 진행될 경우,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니라 문화 유산에 대한 침해로 간주될 수 있다. 이는 단지 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우리가 고인의 예술과 철학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공동 윤리의 문제다.
또한, 이러한 AI 예술의 확산은 예술가의 죽음조차 상업적 상품화로 이어지는 문제를 드러낸다. 디지털 복제가 쉬워지고 AI가 학습한 데이터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 우리는 어느 순간 예술의 주체가 누구인지조차 모호한 시대를 살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흐름은 예술의 진정성과 고유성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킬 위험성이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일부 전문가들은 AI가 생성한 작품에는 반드시 ‘AI 창작’이라는 명시적 표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고인의 스타일을 활용한 창작물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경우에는 상속자 혹은 저작권 보유 기관의 승인 또는 수익 분배 모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예술은 자유지만, 그 자유는 고인의 명예와 유산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
창작의 자유와 고인의 권리 사이에서
AI가 죽은 예술가의 작품 스타일을 모방하는 시대. 기술은 예술의 경계를 넘고 있고, 우리는 그 경계의 재정의를 요구받고 있다.
창작의 자유는 소중한 가치이지만, 그 자유가 타인의 명예와 철학, 유산을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윤리적 균형을 맞추는 것 또한 예술가와 사회의 책임이다.
앞으로 우리는 예술가의 죽음 이후에도 그들의 정체성과 창작물을 존중하는 새로운 윤리적, 법적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이야말로, 기술 시대의 예술이 진정한 인간의 얼굴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침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