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살바도르 달리가 영상으로 부활한 날]에 대해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 플로리다 박물관에서 구현된 AI 달리의 사례와 그 철학적·윤리적 파장
죽은 예술가가 돌아왔다: ‘AI 달리’ 프로젝트의 탄생
2019년, 미국 플로리다의 살바도르 달리 박물관에서는 전 세계 관람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전시가 시작되었다. 바로 살바도르 달리가 영상 속에서 살아 돌아와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디지털 부활’ 프로젝트였다. 이름하여 ‘Dalí Lives’.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전시 이상의 실험이었다. 죽은 예술가가 스스로를 소개하고, 스마트폰으로 셀카까지 같이 찍어주는 전대미문의 체험.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다 — 예술가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AI가 구현한 달리는 과연 누구인가?
이 프로젝트는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 회사 Goodby Silverstein & Partners가 주도했고, 수년간의 기술 연구와 영상 분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들은 생전에 촬영된 100시간 이상의 달리 인터뷰, 영상, 언론 출연 자료를 바탕으로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달리의 얼굴 표정, 말투, 움직임을 재현했다. 음성은 유사한 스페인 억양을 가진 배우의 목소리를 조합해 달리의 발화 습관과 억양까지 구현했다. 이 AI 달리는 대사 일부를 실제 달리의 문장에서 가져왔으며, 일부는 완전히 새로 구성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가상 달리가 단지 "달리 흉내를 내는 영상 아바타"가 아니라, 관객과의 대화적 인터랙션을 가능케 했다는 점이다. 그는 관람객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죽지 않았다. 단지 미래로 여행을 떠난 것뿐이지.”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네. 나와 함께 초현실을 걸어볼까?”
그 모습은 실제로 달리가 생전 했던 말투와 철학을 잘 재현했고, 심지어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과 함께 사진을 찍는 '셀카 모드'도 구현되었다. 이처럼 AI 달리는 예술적 상상력과 기술이 결합해 만들어낸 21세기형 전자적 환생이었다.
현실을 넘나드는 달리의 정신과 AI의 만남
살바도르 달리는 단지 그림을 그린 예술가가 아니라,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던 초현실주의의 선봉장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예술 작품이라 여기며, 기이한 언행과 시각적 실험으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끊임없이 도전했다. 이런 달리의 철학은, 사실상 그의 생존 이후에도 계속될 가능성을 스스로 암시하고 있었다.
달리는 생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언젠가 클론으로 부활할 것이며, 죽음을 초월할 것이다.”
그는 ‘죽음을 예술로 삼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했고, 자신의 육체와 존재조차 하나의 퍼포먼스로 간주했다. 그렇기에 AI로 구현된 달리는 그의 정신과 기묘하게 조응한다. 그는 실제로 미래에 존재할 또 다른 형태의 자기 자신을 꿈꾸었고, 오늘날 기술은 이를 실현해준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피할 수 없다. 달리의 환생은 어디까지 그의 예술이고, 어디부터는 기업의 연출인가? 'Dalí Lives'는 상업적 목적이 분명한 전시였으며, 그의 이름과 이미지를 활용해 관객을 끌어모으는 이벤트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의 의도는 얼마나 반영되었는지, 혹은 단지 기술적 환상 속의 피사체로 소비된 것은 아닌지 따져보는 시각도 필요하다.
AI 달리는 그의 생전 철학을 요약하고, 일부는 새로 만든 대사를 통해 전시장 환경에 맞게 조율되었다. 그 결과, 진짜 달리가 했다면 말하지 않았을 법한 발언도 일부 등장한다. 이 부분에서 ‘진정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관객은 달리의 말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달리의 데이터에 기반한 시나리오를 들으며, 알고리즘의 출력물을 감상하는 것이다.
이러한 디지털 부활은 기술과 예술이 만날 때 발생하는 새로운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죽은 예술가의 이미지를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으며, 그의 철학을 대표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철학적 경계와 윤리의 질문: ‘디지털 영혼’은 존재하는가?
‘AI 달리’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 철학적 실험이다. 단지 죽은 인물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기억, 이미지, 언어, 목소리를 조합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존재’를 대중 앞에 세운 것이다. 이로 인해 다음과 같은 여러 질문이 등장한다.
“이 AI는 달리인가, 달리의 흉내인가?”
“AI가 만들어낸 존재에도 창작자의 권리가 존재하는가?”
“죽은 이의 퍼블리시티 권리는 언제까지 유효한가?”
“기술로 부활한 인물의 발언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일부 철학자들은 이러한 프로젝트를 ‘디지털 정체성의 재조합’이라고 표현한다. 즉, 원작자가 남긴 수많은 단서를 조합해 전혀 새로운 인물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복제’가 아니라 일종의 ‘제3의 창작’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창작물이 진짜 예술가의 정신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그리고 관객이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지다.
‘Dalí Lives’는 관객에게 달리의 발언처럼 들리는 말을 들려주지만, 그 일부는 실제 발언이 아니며, AI가 생성한 문장이다. 이처럼 혼재된 정보는 관람자의 인식에 혼란을 줄 수 있다. 예술가의 이름으로 말하고 있지만, 정작 그 말은 AI와 인간 프로그래머의 조합물일 뿐이다.
법적인 문제도 있다. 달리의 유산 관리 기관이 이 프로젝트에 동의했기 때문에 전시가 가능했지만, 이는 미래에 수많은 예술가와 셀러브리티가 사후에도 디지털 이미지로 ‘재등장’하게 되는 새로운 문을 연 셈이다. 실제로 일부 스타들은 사망 이후 AI로 본인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계약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기술적 영생’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디지털 존재가 인간의 기억에 남고, 예술계의 일부가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정의할 것인가?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예술은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마무리하며: 달리의 웃음은 진짜였을까?
AI 달리가 영상 속에서 관람객을 바라보며 웃을 때, 우리는 묘한 기분을 느낀다. 그 웃음은 살아있는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정교한 알고리즘의 연산 결과다. 그러나 그 웃음이 관람객의 감정을 움직였다면, 그것은 실패한 모방일까, 아니면 성공한 예술일까?
살바도르 달리는 생전에 “내 작품의 진짜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의미는 관객의 몫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어쩌면 AI 달리는 그 말을 가장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죽음 이후에도 예술은 계속되고, AI는 그 연장선에서 또 다른 형태의 ‘창조’를 시도하고 있다.
이제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그 새로운 예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