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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토라자족의 장례 의식: 죽음은 끝이 아닌 긴 이별

by 디디s 2025. 4. 17.

오늘은 인도네시아 토라자족의 장례 의식: 죽음은 끝이 아닌 긴 이별에 대해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인도네시아 토라자족의 장례 의식: 죽음은 끝이 아닌 긴 이별
인도네시아 토라자족의 장례 의식: 죽음은 끝이 아닌 긴 이별


- 시신을 수년간 함께 두고 치르는 장례 축제

 

토라자족의 세계관: 죽음은 ‘끝’이 아닌 ‘지연된 작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Sulawesi)섬의 산간 지역에는 토라자족(Toraja)이라는 독특한 민족 공동체가 살고 있다. 이들은 수백 년 동안 자신들만의 문화를 고수하며 살아왔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바로 죽음과 장례에 대한 태도이다. 많은 현대 사회에서 죽음은 가능한 한 빠르게 처리하고 감추려는 대상이지만, 토라자족에게 죽음은 삶의 일부이자 가장 중요한 사회적 행사다.

토라자족에게 죽음은 ‘즉각적인 끝’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과 작별하는 데 수년이 걸릴 수 있는 매우 느린 과정이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그 사람은 곧바로 ‘사망자’로 간주되지 않는다. 가족은 그 시신을 마쿠라(Makula)라는 상태, 즉 ‘병든 자’ 혹은 ‘잠시 쉬고 있는 존재’로 받아들인다. 시신은 방부 처리된 뒤 집 안에 함께 보관되며, 매일같이 말을 걸고 식사를 함께 하며 돌본다.

이 기간은 단순히 시신을 두는 시간이 아니라, 죽음과 정서적으로 이별할 준비를 하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긴 작별의 시간은 경제적 준비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토라자족의 장례는 매우 성대한 축제로 치러지며, 많은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몇 년간 돈을 모아 장례를 준비하고,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충분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고인을 떠나보낼 계획을 세운다.

 

수년을 준비하는 장례: 죽음을 축제로 만드는 의식

토라자족의 장례는 단순한 슬픔의 의식이 아니다. 오히려 축제의 정점이며, 마을 전체가 참여하는 커뮤니티 중심의 최대 행사다. 이 장례 축제를 ‘라모난(Rambu Solo’)’이라 부르는데, 이는 단순한 장례를 넘어 음식, 춤, 음악, 동물 제물, 전통복장, 퍼레이드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거대한 문화 퍼포먼스다.

축제 기간은 수일에서 수주에 걸쳐 진행되며, 고인을 기리는 여러 의식이 이어진다. 의식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물소의 제물이다. 물소는 토라자 문화에서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지며, 고인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많은 수의 물소가 희생된다. 어떤 경우에는 수십 마리가 희생되며, 이는 유족의 경제력과 고인에 대한 예우를 상징하기도 한다.

또 다른 독특한 점은, 고인의 관이 나무로 만든 전통 가옥인 ‘통코난(Tongkonan)’ 형태로 제작된다는 것이다. 이 관은 수직으로 서 있는 바위 무덤에 안치되거나, 절벽을 파 만든 동굴 안에 보관되기도 한다. 일부 무덤 앞에는 ‘타우타우(Tau Tau)’라는 고인의 형상을 한 나무 인형이 세워지며, 이는 후손들이 고인을 기억하고, 영혼이 여전히 공동체와 함께함을 상징한다.

이처럼 토라자족의 장례는 죽음을 외면하거나 숨기는 것이 아니라, 고인을 향한 최대한의 존경과 기억을 담아내는 공공의 축제인 셈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삶과 죽음이 단절이 아닌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마네네’ 의식: 죽은 이와 다시 만나는 날

토라자족의 장례 문화에서 가장 놀라운 의식은 바로 ‘마네네(Ma’nene)’, 즉 고인을 다시 꺼내어 만나는 날이다. 이 의식은 장례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진행되며, 죽은 자의 유해를 무덤에서 꺼내어 옷을 갈아입히고, 청소를 하고, 다시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매우 독특한 전통이다.

마네네 의식은 토라자족의 ‘죽은 자는 여전히 가족의 일원’이라는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무덤에 묻혔다고 해서 완전히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그들을 기억하고 돌보며 공동체의 일부로 다시 불러내는 행위인 것이다. 가족들은 고인을 안고, 손을 잡고, 사진을 찍으며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지를 대하듯 한다.

마네네 의식은 외부인의 눈에는 충격적일 수 있지만, 토라자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따뜻한 문화다. 이들은 죽음을 잊지 않으며, 고인을 단지 ‘과거의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의 시간은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흐르고 있다는 관념 위에 존재한다.

마네네는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기억과 공동체성을 재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동시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슬픔을 넘어서, 그것을 삶의 연장선상에서 수용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토라자족의 장례 문화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죽음을 회피하고 두려워하지만, 이들은 죽음과 천천히 작별하고, 그 존재를 끊임없이 기억하고 함께 살아간다.

시신과 함께 살고, 제사를 넘은 축제를 치르고, 심지어 죽은 자를 다시 꺼내어 만나는 이 문화는, 현대의 고립된 죽음과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삶과 죽음이 단절되지 않고, 공동체와 기억을 통해 계속 연결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토라자족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또 다른 형태이자, 긴 작별의 여정이며, 남은 자들이 그 여정에 존엄과 예우를 담아 동행하는 길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우리에게도 죽음과 이별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