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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카카미’ 장례: 조용한 미학과 집단적 애도

by 디디s 2025. 4. 11.

오늘은 일본의 ‘카카미’ 장례: 조용한 미학과 집단적 애도에 대해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일본의 ‘카카미’ 장례: 조용한 미학과 집단적 애도
일본의 ‘카카미’ 장례: 조용한 미학과 집단적 애도


- 가족 중심의 장례 절차와 고요한 의식 문화

 

 

장례의 형식보다 중요한 ‘정중함’의 미학

일본에서의 장례는 ‘정중함의 미학’이라 불릴 만큼, 조용하고 절제된 감정 표현 속에서 엄격한 절차와 예의가 중심이 된다. 장례식은 고인이 떠나는 길을 최대한 조용히, 품위 있게 배웅하는 의식으로 간주되며, 이는 일본 문화 전반에 흐르는 '와(和)'의 가치, 즉 조화와 평정을 중시하는 정서와 깊은 관련이 있다.

특히 일본 장례문화의 핵심에는 ‘카카미(家族葬)’라는 개념이 있다. 카카미는 직역하면 ‘가족 장례’로, 말 그대로 가족과 가까운 친지들만 참석하는 소규모 장례식을 말한다. 이는 고인의 삶을 조용히 회상하고, 남겨진 이들의 애도를 온전히 공유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점점 더 많은 일본인들 사이에서 선호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 장례는 사찰을 중심으로 한 불교식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 하지만 현대에는 이 카카미 형식이 불교 의식에서 일부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생략한 형태로 치러지며, 불필요한 외부 노출이나 과시를 지양하는 조용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의례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흐름을 따른다:

 

고인의 임종 후, 병원 혹은 자택에서 임종 처리를 하고

장례식장 혹은 사찰로 이송

입관식(納棺の儀), 통곡 없이 정중하게 유골 준비

통상적인 ‘오츠야(通夜, 밤샘)’와 본장례인 ‘소고(葬儀)’

화장, 유골 수습

나중에 행해지는 ‘고카이키(法要, 제사와 같은 기일 의례)’

 

이 일련의 절차는 모든 참여자가 마치 하나의 의식처럼 움직이도록 구성되어 있다. 대화는 적고, 표정도 차분하다. 이는 ‘사적인 슬픔’보다 ‘공적인 예절’에 방점을 찍는 일본식 애도의 전통을 반영하는 부분이다.

 

침묵과 상징, 그리고 애도의 방식

일본 장례식의 분위기를 처음 경험하는 이들은 종종 “너무 조용해서 놀랐다”고 말한다. 그렇다. 일본 장례에서는 소리 대신 상징과 형식이 감정을 대변한다. 예를 들어 검은 옷차림은 ‘애도’의 기본이며, 흰 장갑과 검정 넥타이, 여성의 경우 검정 스타킹까지 세세한 복장 규범이 지켜진다. 심지어 화환의 배치 순서나 향의 횟수까지도 정해져 있다.

장례식장에서의 대화는 거의 없다. 울음도 억제되고, 슬픔은 표정과 자세, 동작의 조심스러움으로 전달된다. 가족 구성원들은 장례 동안 고개를 숙이고, 조문객도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며 조용히 퇴장한다. 이런 침묵의 미학은 일본 전통 문화 속 '와비사비(侘寂)'—불완전하고 조용한 아름다움—의 감각과 맞닿아 있다.

특히 인상적인 의식 중 하나는 ‘고토바요시(言葉良し)’라 불리는 마지막 인사다. 이는 유족이 고인의 관 앞에서 작게 중얼거리듯 “수고하셨어요”, “이제 편히 쉬세요”와 같은 인사를 전하는 순간이다. 겉으로는 절제되어 있지만, 그 속엔 깊은 감정의 울림이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장례 후 유골을 모시는 방식도 독특하다. 화장 후 유골은 뼈 하나하나를 젓가락으로 옮기는 ‘하카노코시(骨上げ)’ 의식을 치르는데, 이는 일본에서 장례 중 가장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다. 가족들이 한 뼈도 놓치지 않고 유골함에 담으며, 고인과의 마지막 접촉을 나누는 행위다.

 

변화하는 일본 장례 문화, 그 안의 지속성과 정체성

현대의 일본 사회에서는 인구 고령화와 가족 구조의 변화로 인해, 전통 장례 문화도 점차 간소화되고 개인화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앞서 언급한 ‘카카미’ 장례다.

카카미 장례는 고인을 가장 가까이에서 사랑했던 이들끼리만 조용히 모여 보내는 방식으로, 불필요한 절차와 비용을 줄이면서도 진정한 애도를 나누는 데 집중한다. 특히 도시에서는 이런 형태의 장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일본 특유의 ‘가족 중심 공동체’ 문화의 연장선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장례가 간소화되더라도 ‘형식미’는 여전히 철저히 지켜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전 고인이 좋아했던 꽃으로 관을 꾸미거나, 고인의 사진 옆에 생전 애용하던 물건을 놓는 식의 ‘작은 퍼스널 터치’가 점점 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온라인 조문이나 ‘라이브 스트리밍 장례식’도 등장하고 있다. 이는 고령화 사회에서 멀리 떨어진 친지들이 장례에 참여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기술적 대안으로, 정서적인 연결을 놓치지 않기 위한 시도다.

그러나 아무리 변화가 있더라도, 일본 장례의 핵심은 여전히 같다. 정중함, 조화, 그리고 침묵 속에 담긴 애도. 일본인들은 말없이 함께 고개를 숙이며, 그 안에서 유대와 사랑을 공유한다. 슬픔을 떠들썩하게 드러내기보다, 조용히 나누는 방식이 그들 문화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것이다.

 


일본의 장례는 ‘조용한 축복’이라 불릴 만큼, 말보다 형식과 분위기로 마음을 전하는 섬세한 문화다. 거기엔 개인의 죽음을 ‘사회적 의례’로 정제해내는 일본 특유의 미학이 존재한다.

카카미 장례는 그런 문화 속에서도 점점 더 ‘본질’에 다가가는 방식이다. 불필요한 형식을 줄이고, 가족끼리의 진정한 작별을 선택하는 것. 그 안엔 단순한 절차 이상의 철학이 담겨 있다. 우리는 일본의 장례를 통해 묻게 된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보내고, 또 보내지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