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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건축과 현대 건축 사이, 문화 정체성을 지키는 법

by 디디s 2025. 4. 8.

오늘은 전통 건축과 현대 건축 사이, 문화 정체성을 지키는 법에 대해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전통 건축과 현대 건축 사이, 문화 정체성을 지키는 법
전통 건축과 현대 건축 사이, 문화 정체성을 지키는 법

 

 

— 외래 양식 속에서 우리 건축이 가야 할 길

 

서양 중심 건축 흐름 속, ‘우리다움’은 어떻게 설 자리를 잃었나?

20세기 이후, 한국 건축은 외국에서 수입된 건축 양식과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며 눈부신 발전을 이뤄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자기 건축 언어의 상실이라는 고민도 함께 존재했다.

일제강점기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서양식 석조건축은 근대화의 상징이었고, 해방 이후에는 미국 중심의 현대 건축 양식이 주류가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의 도시 재건과 고도성장기에 들어서면서는 효율성과 속도 중심의 아파트와 대형 건축물이 대거 등장했고, 그 흐름 속에서 한옥과 같은 전통 건축은 낡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이러한 외래 중심의 건축 문화는 디자인뿐 아니라 사유 방식과 공간 철학까지도 외국의 틀 안에서 소비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직사각형 박스형 건축, 대칭적 구조, 기능주의적 배치 등이 보편적인 미덕으로 여겨지면서, 한옥 특유의 유기적 배치나 비정형 구조는 시대에 뒤떨어진 양식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이처럼 외래 양식이 전통을 밀어낸 시기, 한국 건축은 급격히 글로벌화되었지만, 동시에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그늘도 안게 되었다.
‘한국적인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1970~80년대에 이르러 다시 제기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전통의 현대적 계승에 대한 고민이 본격화된다.

 

건축가들의 실천: 전통을 단순히 복원하지 않고 ‘해석’하다

1980년대 이후, 몇몇 한국 건축가들은 외래 양식의 틀 안에서 벗어나 우리 고유의 건축 정신을 재발견하고자 했다.
그들은 단순히 기와지붕이나 마루 같은 시각적 요소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 건축이 가진 공간 철학과 정서적 깊이를 현대적으로 번역하려 했다.

대표적으로 승효상은 ‘빈자의 미학’이라는 키워드로 한옥의 절제된 미감과 여백의 철학을 현대 건축에 녹였다.
그는 콘크리트와 같은 현대적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공간의 흐름, 자연 채광, 숨 쉴 틈을 주는 배치 등에서 한옥의 정서를 차용한다.

김인철 역시 ‘한국적인 건축’을 모색하며, 마당과 대청, 기단과 같은 전통 요소를 현대적 기능에 맞게 설계한 사례들을 다수 발표했다.
그는 “한옥을 따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옥이 만들어진 원리를 현대에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조민석은 ‘두 집 이야기’처럼 전통과 현대의 양식을 병치시키며, 그 사이에서 생기는 공간적 긴장감과 조화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이처럼 건축가들의 접근은 단순히 과거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이라는 유산을 시대에 맞게 해석하는 일종의 번역 작업에 가깝다.
그들의 작업은 우리가 문화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동시대의 언어로 표현하는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도, 교육, 시민의식까지: 건축 정체성을 지키는 공동의 과제

문화 정체성을 건축에 녹여내기 위한 실천은 건축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건축은 도시와 법, 제도, 시민 인식이 맞물려 있는 복합적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전통 건축을 보존하고 현대적으로 계승하려는 흐름이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먼저, 서울시와 문화재청 등 공공기관은 북촌과 익선동, 가회동 같은 전통 한옥 밀집 지역을 보존하고 리모델링 지원을 하고 있다.
한옥 신축을 위한 인허가 기준을 완화하거나, 에너지 효율과 현대적 설비를 갖춘 ‘모던 한옥’ 설계 공모전 등을 통해 창의적인 재해석을 장려하고 있다.

또한 건축학 교육 과정에서도 과거에는 거의 다뤄지지 않던 전통 건축 이론과 실무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
젊은 건축가들 중에는 한옥 목수를 배우며 직접 설계와 시공을 병행하려는 사례도 늘고 있다.

더불어 일반 시민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한옥 체험형 숙소, 전통 양식의 카페와 상점, 지역 기반의 마을 재생 프로젝트 등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전통 공간에 대한 긍정적 관심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전통 건축의 계승은 단지 외형을 지키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철학과 감성을 존중하고, 그것을 시대에 맞게 번역해내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이 일은 건축가만이 아니라, 제도와 시민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화적 과제다.

 


한국 건축은 오랜 시간 외래 양식의 물결 속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지만, 지금은 전통을 다시 바라보고, 재해석하며 계승하려는 흐름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는 단지 과거로 돌아가자는 뜻이 아니라, 전통이 담고 있던 본질을 오늘의 삶에 맞게 녹여내려는 시도다.

문화 정체성은 그 나라의 건축에 스며들어야 살아남는다.
눈에 보이는 기와나 한지보다 중요한 것은, 공간을 바라보는 태도와 그것이 담고 있는 철학이다.

앞으로의 한국 건축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우리다운 것’을 바탕으로, 더욱 풍부하고 강인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전통을 단순히 ‘과거’로 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지금-여기’에서 재해석하는 용기에서 출발한다.